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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여순 청년 서포터즈

여순 사건 다이어리: 8. 여수 순천 탐방 일지 ③

사용 가능 2023. 12. 5. 23:47

 

여순 사건 다이어리: 7. 여수 순천 탐방 일지 ②

 

여순 사건 다이어리: 7. 여수 순천 탐방 일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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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희 박사님의 강연이 끝나고 우리는 만성리 해수욕장 쪽으로 이동했다. 검은모래해변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 곳에는 네 군데의 피해구역이 몰려있다. 마래터널, 애기섬, 만성리 학살지, 형제묘이다. 

 

 

 

마래터널

 

 

길이 640m, 높이 4.5m의 왕복 1차선 터널. 이곳은 제2터널로, 1터널은 폐쇄되어 있으며 1터널보다 2터널이 비교적 크다. 2터널은 국내 유일한 차량통행용 자연암반 터널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유명하다. 수송전용 기찻길인 제1터널은 현재 레일바이크 코스로 사용 중이다.

 

 

카카오 로드뷰와 한국관광공사

 

 

일방통행 도로라 교행을 위한 대피공간도 내부에 마련되어 있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길 안쪽에 암벽이 드러난 길이 있다. 울퉁불퉁한 벽면이 언뜻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문제 없는 듯하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지날 때에는 차가 많아서 천천히 돌아보지 못하고 버스를 탄 채 빠르게 지나야 했다. 매우 좁고 불편하지만 이동이 빠르고 편리한 길이라 이용하는 통행량이 많다. 암반 터널인데다 역사적 의미 및 지형상의 안전 문제 등으로 확장이나 추가 설치는 어렵다고 들었다.

 

일제강점기에 물자 수탈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공사에 지역 주민 또는 함경도 등의 조선인과 만주 중국인이 끌려와 강제 노동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건설 장비가 없어서 끌과 정이라던가, 망치 등으로 돌산 암벽을 깎아가며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귀신 이야기로도 유명한데, 이는 하루 이틀 나온 이야기가 아니고 굉장히 오래 이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이전에는 마래터널 주변에 통행인들이 놓아놓는 돌탑이 있었다고 한다. 돌을 주워들고 터널을 들어가지 않으면 귀신을 본다는 괴담이 있었으며, 나올 때 반대편에 던지는 식이었다고 했다.

 

 

 

만성리 학살지

 

마래터널을 지나면 여순사건 학살지가 바로 등장한다. 골짜기 형태로, 용골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종산국민학교(현 중앙초등학교)에서 부역혐의자로 수용되어 있던 수백여 명의 민간인이 묶여서 끌려와 집단 학살을 당했다. 골짜기 절벽에 올라가서 총살을 당하면 동백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졌다고 한다. 학살 후 골짜기에 던져 넣어서 흙이나 모래, 돌로 암매장 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헌화와 묵념을 한차례 진행했다. 현재는 정비가 되어 골짜기가 그리 깊지 않아 보이는데, 이전에는 더 깊고 꼭대기가 높았던 듯 보인다. 여순사건 기간 이후 1951년에도 집단학살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일이 여순 전역에 자주 있었다고도 한다.

 

여수 사람들은 마래터널부터 형제묘까지 잘 지나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일이 흔했다고. 앞서 설명한 괴담에 덧붙이자면, 한 서린 귀신을 보는 이들이 있기도 했다고도 한다. 넋을 위로하기 위해 돌 탑을 쌓거나 계곡에 던지는 등, 풍속을 지속하며 조심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애기섬

 

 

 

마래터널을 나오자마자 레일바이크 쪽 트인 바다를 보면 저 멀리에 섬들이 있다. 오른쪽에 둥글게 큰 섬(엄마섬)이 있는데 그 왼쪽 자그맣게 솟은 것이 애기섬이다. 오동도 맞은편에 위치해있다.

 

좌익인사들의 사상을 변환시켰다며 국가 보도용으로 이용한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한국전쟁 당시 북에 합류할까 두려워 하며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해당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비롯하여 민간인 등 사람들을 포승줄에 묶어 싣고 들어갔다. 총살 등 처형으로 수장시킨 주요 학살지 중 하나이다. 당시에는 무인도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으로 퍼져있었다. 물살이 남해에서 대마도로 빠지는 물살이라 육지쪽으로 시신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염두한 것이다.

 

 

 

 

형제 묘

 

만성리 학살지에서 더 걸어가면 언덕을 오르는 길이 있다.

 

종산초등학교에 수영됐던 부역혐의자들이 재판없이 총살되고 불태워진 곳이다. 당시 여수경찰서 형사가 직접 지켜보았다고 증언했는데, 다섯씩 총살한 뒤 다시 다섯씩 장작더미에 눕혀 큰 더미로 5개를 태워 125명이 사망했다고 본다고 했다. 해당 처형은 헌병이 주도하였고 기름을 부어 태웠으며 3일간 시신이 불에 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위에 커다란 바위를 굴려 덮었다는데, 코를 찌르는 시신 태운 냄새가 한달 넘게 이어졌다고도 한다.

 

유족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초를 세우는 등 감시하는 바람에 유족들은 시신을 찾지 못하고 이곳에 묘를 세웠다. 주변에 공동묘지가 있어서 해당 위치가 상할까 걱정한 것도 묘를 세운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현재 묘비 뒤에 작성했던 학살 희생자들 이름은 가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덧붙여 가린 흔적이 남아있다. 시대 상황상으로 정부 및 관련 인사들이 언제 희생자들을 조사할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빨갱이 낙인 등이 그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탄압당하는 경험이 쌓여있었기에, 유족이 알려지면 어떤 변을 당할지 알 수 없어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가린 것이다. 안내문에 '부역혐의자'로 표기된 오류를 가리기 위해서 이기도 했다. 그를 지금도 피해자와 유족들 중에는 알려지기 꺼려하는 이들이 있어서 피해신고에 어려움이 있다. 현재 피해신고 기간을 1년 연장하기로 결정되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헌화와 묵념, 도서 낭독을 진행했다. 이후 버스를 타고 순천 장대공원으로 향했다. 장대공원의 사진 등은 3번 포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