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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여순 청년 서포터즈

여순 사건 다이어리: 6. 여수 순천 탐방 일지 ①

사용 가능 2023. 12. 5. 01:04

여순 사건 다이어리: 5. 시월, 우연한 전시 ②

 

여순 사건 다이어리: 5. 시월, 우연한 전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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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서포터즈에서 여순사건 탐방의 기회를 얻었다. 이번 게시글은 여수와 순천을 돌았던 하루동안의 기록이다. 3편에서 4편 정도로 이어질 예정이며, 1편은 여순항쟁탑과 주철희 박사님 강연에서 다루어진 질답을 기록하려 한다.

 

 

여순항쟁탑

 

 

전라남도 순천시 연향동. 팔마체육관(또는 종합운동장) 안쪽 넓은 주차장 건너편에 여순항쟁탑이 세워져 있다. 처음 설치된 것은 2006년 4월 1일로, 2020년 5월에 주변을 정비하면서 '여순항쟁탑'으로 명칭을 바꿨다고 한다. 아래의 빨간 팻말에 적혀있던 것이다.

 

 

 

 

탑은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탐방 일자가 여순사건 이틀 뒤로,  탑 주변에 화환이 여러개 둘러져 있었다. 사진으로는 따로 남기지 않았다. 

 

 

 

 

여기서 국화 꽃을 헌화하고 잠시 묵념했다. 직후 주차장에 들어선 버스를 타면서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되었다.

 

 

 

 

여수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여순사건 연구자인 주철희 박사님을 만났다. PPT는 둘째고, 실제로는 Q&A를 나누면서 여순사건에 대해 정보를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상징물 동백꽃

 

이때 들은 설명 중에는 동백꽃이 왜 여순항쟁 상징물로 사용되는지도 있었다. 앞서 포스팅한 〈동백꽃 필 때까지〉에서 한 번 설명하고 넘어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설명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백을 봄을 알리는 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남쪽에 주로 피는 꽃이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제주와 전라남도하면 빠질 수 없는 꽃으로, 제주 4·3사건의 상징물로도 쓰인다. 여순사건 학살지였던 오동도 또한 봄이 되면 동백꽃이 만발하는 섬이라고 한다. 

 

 

 

현대사의 여순사건

 

가장 신기했던 것은 여순사건의 현대사 연표의 위치이다. 여순항쟁은 1948년 일어났다. 불과 19년 전인 1929년에는 광주학생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심지어 54년 전 1894년에 벌어진 동학농민운동이 75년 후인 2023년보다 더 가깝다. 

 

 

 

여순 '반란'이라는 이름

 

 

여순사건도 여타 다른 국가 폭력 사례처럼 명칭에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사건, 항쟁, 반란, 학살 등의 명칭이 있는데, 이는 때와 상황에 따른 변화로 지금은 혼재하는 상황이다.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여순사건법) 제정 1주년을 맞이한 작년에는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다. 기사에 의하면 해당 사건을 '항쟁'으로 볼 수 있느냐의 여부가 쟁점이었다고 한다.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도  ‘10‧19의 성격과 정명’을 주제로 국내 학술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한겨레] 사건인가 반란인가 항쟁인가…여순사건 명칭 논의

 

 

주철희 박사님은 역사를 보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용어의 선택은 역사 기록에서 인식에 영향이 크다는 이유였다. 민주공화국에서 민주주의의 주체는 국민인데, 사회 전반에 깔린 사상은 여전히 봉건주의-전통주의 상태라며 국가를 여전히 권력자로 보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현재 지금 사용하는 공식적 표현은 '여순 사건'이나, 이는 권력자의 표현으로 중립적이다. 역사적 성격이 부여되기 보다는 어떤 event적 속성에 가깝다고 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여순 반란'으로 알고 계신다. 당시 군인들이 벌인 행위는 국가에 반역을 일으킨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70여년 정도 반란이라는 두려운 이름 아래 사람들은 진실을 알리지 못하고 숨을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연관된 표현으로 학살이 있다. 학살은 일방적인 죽음이다. 그러나 1019는 14연대가 제주 진압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키며 시작했다. 그에 더하여 민중이 지지를 표했으니 단순 학살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공식적 단어로 적합한 단어가 바로 '항쟁'이라고 한다. 지지를 표한 민중이 항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또다시 제기된다. 모든 비슷한 민주적 사건이 그러하듯, 날짜 하나에 명칭을 고정하는 것은 축소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주철희 박사님께서 현재 고려 중에 있다는 명칭은' 전남 10월 항쟁'이다. 여수 순천뿐 아니라 넓은 면적에 걸쳐 벌어졌고, 영향을 끼친 일임을 염두했다고 하셨다.

 

현재의 여순사건은 유족 중심의 피해사실이 더 집중되고 있다. 주철희 박사님 말씀으로는 여순사건을 교육할 때 단순 피해사실을 넘어서서 사망한 이유를 파헤쳐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후에 같은 사건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미리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비석이 그 예라고 하셨다. 

 

단순 피해사실만 나열하면 유족들만의 이야기에 그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흘러 관련인들이 모두 사망하면 기억하는 이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이으려면 초점 또한 넓고 긴 범위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내 눈으로 바라본 현재의 대한민국을 대입하니 어떤 사실이 느껴졌다. 여순사건은 1948년에 끝나지 않았다. 그 영향이 여태까지도 대한민국 사회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빨갱이'가 있다. 이는 지금도 누군가를 매도할 때 쓰이지 않는가.

 

(사실대로 이야기 하자면, 지난 장대공원에서 여순사건 팻말을 촬영 중일 때, 장년의 남성이 여순사건은 반란이었고, 그들은 빨갱이었다며 고성을 지른 일이 있었다. 나는 그가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동시에 아직 여순사건에 대한 왜곡이 끊이지 않다는 현실을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주철희 박사님 강의 中 명칭과 연도 배경 설명

 

 

일단 나는 이 포스팅 시리즈에서만큼은 서포터즈 명칭과 같은 '여순사건'으로 칭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확대된 표현인 항쟁에 더 마음이 간다. 위에 보면 알 수 있듯이, 내가 배운 여순사건은 단순 사건이나 학살 등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커다랗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논의되어야 할 이야기도 그만큼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사건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위에 나온 고려 중인 명칭은 조금 이른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은 학살 피해에 대한 희생자 진상규명이 더 중점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타이밍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즈음 느끼기로, 과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에는 어떤 필연적 과정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