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다


처음 '10·19 여수 순천 사건' 을 알게 된 것은 작년 2학기, 교내에 설치된 표지판을 봤을 때였다. 당시의 나는 코로나 비대면 수업과 휴학을 거쳐 갓 복학한 1학년이었고, 충청도가 고향이었기 때문에 해당 사건이 낯설었다.

친구에게 '여순 사건'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다. 친구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알아왔느냐며 신기해 했다.


표지판은 학교의 가장 공개적인 곳에 세워져 있었다. 정문 입구에, 캠퍼스 중앙에… 그런데도 많은 학우가 표지판의 존재를 몰랐다. 여수 순천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도 손에 꼽았다. 알더라도 왜곡된 시선을 가진 이들이 여럿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정문 입구 운동장 앞 열린 광장에도 하나 더 서있던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가보니 사라진 것 같았다. 주변에는 표지판의 존재조차 몰랐던 사람이 많아서, 언제 사라진 건지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마치 신기루(환상) 내지는 꿈처럼 느껴진다. 혹시 내가 봤다고 생각하는 팻말은 처음부터 없었던 걸까? 모두 내 착각일까? 매일 같이 다니던 길인데 이제 알아챈 것이 부끄럽다.
만약 열린 광장의 표지판이 있었다가 없어진 게 맞다면, 내가 어떤 팻말이든 유의 깊게 읽어보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나도 그저 스쳐 지나가느라 영영 몰랐을지 모른다. 어떤 기록이 사라졌다는 것이나, 사건의 존재조차 모른 채 지금의 평화를 누렸을 테다.

이전부터 국가 폭력의 피해자 사례에 관심 있었다. 위의 팻말을 읽은 뒤에는 더 세워진 것이 있는지 궁금했고, 인터넷으로 지도와 뉴스를 검색해 찾아보았다.
여순사건 표지판은 2019년에 재설치를 시작해, 21년까지 사건 현장 25군데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순천대학교, 북초등학교, 남초등학교, 매산중 앞 학교와 동천 등, 모두 내 생활 반경과 밀접한 위치였다.

얼마 전에는 중앙동 상가 길을 걷다가 지은 지 얼마 안된듯한 건물을 발견했다. 중앙에는 뜬금없이 툭 튀어나온 듯한 골동색 팻말이 세워져 있었고, 나는 해당 건물을 소개하는 것인 줄로 알았다. 습관처럼 글을 읽다가 '1948년 10월 19일'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들었다.
새삼 깨달았다. 내가 걷는 모든 길이 과거 누군가의 어떤 투쟁과 희생 위에 있다는 것을.
아주 당연한 소리인데, 이렇듯 피부 위로 다가오는 날은 왜 매일 오지 않는지. 나는 종종 스스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으스댄다. 동시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느껴 부끄럽다.
어쩌면 두려운 것도 같다. 내가 그렇게 놓쳤거나, 놓치고 있거나, 앞으로 놓칠 것들이 얼마나 많았고, 많고, 많을 지 가늠 조차 되지 않아 그렇다.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뒤, 어떤 형식으로 쓸지 오래 고민했다. 수많은 후보가 있었지만, 주제를 다루는 데 많은 주의가 필요했다. 또, 티스토리 서식 내에서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형식으로 고정했다.
이 카테고리의 글은 내가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솔직한 감상을 정리하는 것이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라 보았다. 작은 감상으로 사회를 보는 시선을 구축하는 편인데, 성향 그대로의 방식이다.
내가 어느 날 표지판을 발견했듯, 누군가 어느 날 발견해 읽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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